본문 바로가기
독후감/문학

「농담」- 밀란 쿤데라

by 엘리야스 2023. 12. 4.

민음사 밀란 쿤데라 전집 1 - 농담

 

 

 

1. <농담>


책 전반에 대해 던져졌던, 하지만 어렴풋이 만 와닿았던 “농담”이란 단어를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으며 이젠 알겠다. 자초한 인생의 아이러니 - 루드비크를 통해 말하고자 한 살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운명의 장난이란 생각(자주 그리고 많이 경험해 볼 만큼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밖에 들지 않는 아이러니 혹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삶의 실수와 오점이 쭉 쌓여 만들어진 헤어 나올 수 없는 공허와 같이 그렇게 그런 농담이 작든 크든 결국 파괴적 삶을 불러왔다.

그런 점에선 코스트카에겐 농담이 없어 보인다. 농담처럼 얽히고 설킨 루드비크와의 관계에서 어쩌면 그의 서사는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 혹은 자신의 발언과 태도로 인해 야기시킨 재앙에 대해 책임 회피적이거나 부정하진 않는 사람인 듯하다. 아님 신앙과 종교 교리를 삶의 도덕적인 기준 삼아 재앙을 잘 받아들이는 부류의 인간.

그리고 사담인데 나는 소설 인물 중에선 코스트카와 가장 가까운 듯 하다.

후반부의 헬레나의 이별에 대한 절규는 루드비크와 루치에의 이별의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루드비크와 루치에는 영혼적으로 맺었으나(이것도 사실 루드비크만의 입장 일 수도?) 육체적으론 맞지 않았고, 헬레나와는 육체적으론 맺고 영혼적으론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마치 루드비크와 루치에의 관계의 방향성이 일방적인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루드비크와의 이별의 슬픔으로 주변에 있던 알약을 한 번에 삼켜서 자살 기도하지만 사실 변비약이었고 무슨 저질 농담처럼 살아난다.

그렇게 복수인지 뭔지도 이젠 흐지부지 되어서 떠돌다가 본인 스스로 농담과 인생에 대해 깨닫고 오랜 친구인 야로슬라프를 만나서 음악으로 소원했던 관계를 해소하며 해피 엔딩인 듯하다가, 야로슬라프가 심근경색으로 연주 중에 쓰러지며 끝난다.

질 나쁜 농담처럼.









비교적 젊은 쿤데라

 

 

 





2. <헬레나와 루치에> 


과거의 복무 기간 중 우연히 만난 루치에.
그녀는 순수하며 어찌 보면 공허하고 가끔 보면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듯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인물. 주인공과 “영혼”으론 통했으나 “육체”론 통하지 못한. 본인의 몸에 대한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 때문인지 주인공과 결국 맺어지지 못하고 서로 상처만 입고 떠난 주인공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반대로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사무적 관계로 만나게 된 헬레나.
한 아이의 엄마이며 주인공이 증오한 제마네크의 아내이며 공산당 방송국 기자 일을 이어가며 진심인지 연기인지 늘 웃으며 활기차게 다니며 취재를 하는 사랑과 부부 관계는 차갑게 식고 일적으론 찌들어 있으며 육욕이 쌓여있고 주인공과 “육체”적으로 통했으나 “영혼”이 통하진 않는. 주인공을 사랑했지만 사랑받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이 두 인물에 대비되는 서사가 눈에 들어왔던 거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과 육의 이분법적 이야기들. 그것을 표상한 인물이 헬레나와 루치에 같았다. 그들은 또한 서로가 서로의 테제와 안티테제로 작동하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책 중 화자도 헬레나만 나와서 생각과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여 인물상에 대해 더 이해하기 쉽다면 루치에는 그 반대였다. 루치에는 신비적인 기조를 유지하다가 코스트카의 챕터 중에 더 정확한 서사와 속내가 알려지지만 사실 루치에 가 가진 본연의 신비적인 특징으로(그리고 루치에의 이야기를 코스트카를 통해 건네어 들은 루드비코의 증언까지 더해서) 확 심리를 단정 짓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루치에의 시점이 나오지 않은 게 헬레나와 대조되며 작품성과 흥미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루치에와 헬레나

 











3. <과거와 현재>

위의 둘로 나뉘는 테마는 비록 두 여성 인물에서 멈추지 않고 루드비코의 삶과 체험을 통해 보는 과거와 현재로 구분된다.

한 체제와 시대 상에 속해 그런 상황 속에 동조하며 궤를 같이 하지만 루드비크의 특유의 농담 기질로 인해 겪었던 치욕을 통해 타인과 단체에 의해 부정당하거나(혹은 제마네크처럼 단지 본인의 평판과 찬사를 위해 입장을 바꾼다던지).

사실 고향을 사랑하며 어머니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학의 자신과 썸 타던 메르케타와의 시간도 포기한 그는 그녀에게 조금 냉소적이고 쿨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던 그는 쉬이 허락하지 그녀에게 화가 난 미숙한 루드비코는 ‘토로츠키 만세’ 농담을 통해 학교에서 배제되었다.

몇십 년 넘게 고향을 증오하게 만들고 서로를 동무라고 부르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죄받던 그 시간과 행동들은 공산주의라는, 다 같이 다 함께라는 미명 아래 휩쓸려간 개인을 루드비코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체제는 붕괴하지고 복수는 무의미해지고 개인의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현대인을 아버지인 야로슬라프완 달리 ‘기마 행렬’에서 몰래 빠져나가 본인이 좋아하는 가치와 흥미를 향하여 쫓아가는 블라디미르로 이야기했다.

격변적이고 과도기적 시대와 세계에서 방황하고 고통받고 유린당하는 인물이었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그로 인해 놓치게 되는 본질들.

'독후감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신」- 프란츠 카프카  (1)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