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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문학

「변신」- 프란츠 카프카

by 엘리야스 2024. 1. 10.

권혁준 역

 

 

나는 위스키를 좋아한다. 물, 곡물이라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식재료를 가져다가 사람마다 오만가지 다른 방법과 기술로 각자의 깊은 사연을 느끼게 해주는 풍미를 느끼게 해주니까.


나에게 있어서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그 내용이 길든 짧든, 전하고자 하는 줄거리가 한 줄로 요약되더라도 텍스트를 읽으며 음미하는 과정 중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나의 뇌가 그것에 전념토록 하는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변신>은 좋은 소설이다. 워낙에 변신이란 작품은 유명하기도 하고 단편으로 내용이 길지 않으며 간결한 문체와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스토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어쩌면 주제의식이나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일맥상통 할 것 같으나, 실제로 글을 읽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해석과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볼 만한 여지를 주는 책인 것엔 분명하다.






1. ‘변신’의 부조리와 한계상황

변신 후 서서히 잊혀져가는 인간성과 함께 인간으로 되돌아갈 희망도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연기처럼 옅어지며 갑충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레고르. 하지만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가 마지막으로 죽어가던 그를 깨워 방의 바깥으로 그를 이끌지만 상황은 꼬여만 가고 다시금 방으로 쫓겨나고 그렇게 맞이한 한계상황의 끝은 갑충으로써 쓸쓸히 맞이한 죽음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대부분은 부조리를 겪게 된다. 그것이 부모의 신분 또는 선천적 신체의 특징, 날벼락같은 교통사고를 당해 생긴 장애 등 내가 결정하지 못하는 것들에게서 유독 억까를 크게 당하고 느끼는 것 같으며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모두 나를 향하는 것만 같고… 그 속에서 혼돈과 절망을 겪으며 어떻게든 발버둥 치거나 받아들이며 살게 된다. 극복하거나 회피하거나 체념하거나 망각하거나.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과 태도를 갖고 함께 이겨내보아요!’ 같은 동화는 카프카에겐 없었다. 그저 잠을 방해하던 귓가의 성가신 모기가 죽은 것처럼 간결하게 서술되는 그의 죽음과 대비적인 골머리 썩히던 문제로부터 마침내 해결된 듯 기뻐하며 성호를 긋고 산책과 휴식을 즐기며 안도하는 가족들.

정말 말도 안 되고 마법 같은 소설의 상황이지만 그렇기에 고민해 볼 수 있는 인간 육체를 넘어선 실존의 이야기; ‘내가 그레고르였다면…?’.





2. 가족의 변신

돈 벌어다 줄때엔, 즉 자신들에게 필요하고 이득이 되는 존재일 땐 잘 대우해 주는 부모와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고된 노동의 대가를 자연스레 누리는 것에 익숙해지니까 그에게 미적지근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변신 후 그를 돌보다가 본인들의 하숙인을 내쫓게 만들자(본인에게 해가 되니까) 적극적으로 그를 배제하려는 배신의 모습이 참 요즘 흉흉한 친족 사건 뉴스 보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꺼름직하여 뇌리에서 종종 생각나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사건말이다. 감탄고토, 그것도 정말 눈앞의 이득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부양한 친지의 등에 칼을 꽂는 게 어쩌면 내재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기독교적이며 고전적인 가족애는 퇴색되며 득실로 엮이고 끊는 비즈니스 같은 암울한 자본주의적 의미의 가족 관계를 보여준 카프카와 그의 삶 속 가족의 해석… 참으로도 카프카스럽다.




3. 정신적 성숙과 시대 상황(번아웃)

히키코모리. 아마 다들 읽으며 한번씩 머릿속을 스쳐 갔을 생각이다. 통속의 뇌처럼 ‘사실 갑충으로 변해서 사회•경제 활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엠생이라 방구석에서 갇혀서 1차원적인 쾌락을 좇다 보니 집에서 사는 엄청 큰 갑충과 다른 게 없는 거라면?‘ 같은.

나는 요즘 들어 특히 사람들이 정신 질환을 감기처럼 으레 하나 둘은 앓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히키코모리와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전례 없는 급진적인 세계 간의 상호 연결과 사회변화 속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해야만 하는 사회는 개인에게 그만큼 더더욱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정신적 성숙과 자아의 완성을 이룰 시간 없이 개인이 바쁘게 그 주문을 따라가다가 보면 낙오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설령 따라가서 성공한 삶을 누려도 그 마음은 공허하며 병들어 있어 은퇴하며 건강을 챙기고 뒤늦은 행복 찾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얼마 전 유행했던 욜로 또한)

히키코모리처럼 도태 되어 고립을 선택하거나, 그레고르처럼 변신하여(혹은 통속의 뇌처럼 ‘변신’ 한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여 번아웃을 변명 삼거나) 사회에서 나가떨어지든가. 위 상황처럼 갑작스러운 번아웃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자기파멸적 피로와 권태를 ‘갑충으로의 변신’이란 은유로 소설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책이 세상에 나온 격동의 20세기를 지나 작금의 21세기를 사는 나.  그때와 지금의 시대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지만, 오늘날에도 그의 글을 읽자면 여러 가지 자연스레 연상되는 사건과 공감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것은 시대를 앞서는 그의 세련된 감각 덕분일까? 혹은 시간에 의해 빛바래지 않는 그의 깊은 인간에 대한 통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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